초록의 공명

(2007-01-09 23:05:33)
이계삼
젊음과 늙음
한 졸업생 아이가 전화를 걸어 안부 인사를 전해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싸이월드 하냐고 묻기에 안 한다고 했더니 제 주소를 가르쳐주면서 ‘한번 놀러오라’ 했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그 아이의 미니홈피를 구경했다. ‘1촌’으로 맺어진 동창 친구들 대여섯 명의 미니홈피까지 함께 보았다. 다들 행복해 보였다. 놀러가서 찍은 사진들, 맛난 음식들, 세상의 이쁘고 재미난 것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싸이월드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생각들이 많았는데, 녀석들의 미니홈피에서 20대 초반 나이대에 고유한 방황이나 사색의 흔적은 별로 엿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허전하기도 했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 행복의 이면에는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한 걱정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들의 미니홈피는 ‘갇힌 젊음의 초상’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한겨레21>에 실린 기사, ‘기자가 뛰어든 세상-리어카 할머니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두 번 읽었다. 며칠씩 리어카로 위태위태하게 박스를 쌓고 모아서 2500원을 버는 노인이 있다. 일흔여섯 된 할머니가 하수도 오물을 파내는 ‘공공근로’를 술기운으로 겨우 버텨낸다. 그나마도 사흘 이상 쉬면 다른 사람한테 ‘자리’가 넘어가니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한다. 슬프고 부끄러웠다. 스크린쿼터 집회에 참석한 어느 여배우의 겨드랑이에 찬 땀까지 잡아내서 사방팔방에 드러내놓고 낄낄거리면서도 이 땅 그 많은 노인들이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 ‘새로운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다니….

그 기사를 읽고 난 뒤 내 눈에도 ‘일하는 노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퇴근길에 노란 조끼를 입고 네발 달린 오토바이가 이끄는 수레에 산더미 같은 박스를 싣고 가는 할머니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 앞에서 박스더미를 묶은 끈이 풀어져버렸고, 박스는 도로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잠시 도와드렸더니, 연방 ‘미안합니더’ 하신다. 한 시간 뒤,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시내 다른 곳에서 다시 새롭게 박스를 모으고 있는 그 할머니를 보았다. 잔뜩 웅크린 채 박스를 모으는 노란 조끼의 할머니 옆으로 언제나처럼 싱싱한 젊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나는 ‘늙음’과 ‘젊음’에 대해 생각한다. 젊음을 잃기야 싫겠지만, 늙음 또한 받아들여야 할 좋은 것이리라. 한 사람의 삶의 과정이란 ‘배우는 시간’을 보내고 ‘배운 바대로 사는 시간’을 지나 ‘전해주고 떠나는 시간’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누천년 이래 내려온 인간 삶의 과정이다. 젊음에는 ‘방황’의 자유를 보장해주었고, ‘늙음’에는 연륜과 지혜를 받들어주었다.

그러나 참으로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과정이 헝크러지고 말았다. 이 시대의 젊음은 방황으로, 저항으로 분출하지 못한다. 이 시대의 늙음이란 외롭고 고단하며 때로 모멸적인 것이다. 단계도 계통도 없이, 오직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밀려났을 때의 공포’로 사회는 재조직됐다. 그리고 우리는 무언가에 갇힌다. 일본의 사상가 후지타 쇼조의 표현처럼 이 시대의 우리 인생이란 ‘보육기’(保育器·유치원에서 시작해 학원으로 학교로, 군대로, 회사로, 아파트단지로 그리고 병원과 실버타운으로)를 옮겨다니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은 거기에 갇히는 데 드는 ‘비용’을 대기 위해서다.

젊은이들은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사회는 답한다. “저길 봐. 까딱하면 늙어서 실버타운에 못 들어가고 박스나 주워모으며 살아야 할지도 몰라.” 젊은이들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벌하게, 경쟁한다. 방황도 일탈도 없이. 인간 삶의 자연스런 과정인 ‘늙음’이, 지혜와 연륜의 상징이었던 ‘노인’이라는 존재가 이토록 모멸적인 대우를 받은 때가 유사 이래 또 있었던가. 손바닥만 한 미니홈피 속에 소꿉장난하듯 웅크린, 그러면서도 무언가에 쫓기는 젊음으로 가득 찬 사회, 여든이 다 된 노인들이 술기운으로 견뎌가며 하수도를 파내는 사회에서 ‘인생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고작 이런 ‘근대의 악몽’ 속에 편입되기 위해 우리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깨부수고 경제성장을 향해 질주해왔단 말인가.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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