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공명

(2006-11-20 16:58:50)
이계삼
수능을 치른 아이들에게
수능 시험이 끝났다. 나는 올해도 수능감독관을 했다. 우리 학교가 고사장이었고, 정말 하기 싫지만, '짬밥'이 안 돼서 할 수 없다. 앞으로 15년은 더 있어야 이런 노역에서 해방된다. 수능 감독관은 수당을 10만원 가량 받긴 하지만, 교육도 무척 엄하고, 실수가 있으면 큰일 나기 때문에 다들 긴장한다. 수능 전날에는 학교 대청소를 했는데, 때빼고 광내는 것은 물론이고, 커튼도 새로 세탁을 하고, 또 학급 게시물을 모조리 떼내야 했다. 태극기도, 급훈 액자도, 달력도, 모든 낙서도 지워야했다. 사물함은 뒤로 돌려놓고. 교실은 회벽과 커튼과 책상 걸상만이 남아 있다. 완전한 진공상태에서 시험을 치르게 한다는 뜻이지만 좀 우습고 또 서글프다.

시험장 입구에는 우리학교 아이들 뿐 아니라 이웃 고등학교 아이들까지 꼭두새벽부터 몰려나와 시험장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응원하느라 야단이다. 새벽 다섯시부터 자리잡기 경쟁이 시작됐다나... 격문과 북소리와 온갖가지 기발한 구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험 치를 아이들은 다소 멋쩍은 표정으로 후배들이 건네준 차 한 잔을 받아들고 시험장으로 들어선다.

1교시 감독을 들어갔더니 우리 학교 아이들이 몇 명 앉아 있다. 나름대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해보인다. 시험지를 나눠주고, 시험이 시작됐는데, 마치 수전증 환자처럼 손을 덜덜 떨며 시험지를 넘기는 아이가 여럿이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보인다. 원래 그러면 안되지만 곁으로 살짝 가서 등을 톡톡 토닥여준다. 긴장하지 말라는 뜻인데, 잠시 호흡이 진정되는 느낌이 전해온다.

2교시 때부터 벌써 엎드려 있는 아이들도 보인다. 직업훈련원에 위탁교육 나가 있는 아이들도 시험을 치르고, 결연한 표정으로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나, 지겹다는 듯이 머리를 파묻고 멍하니 앉은 아이들도 적지 않다.

저 아이들도 지금 바깥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와 친지들이 있겠지. 공부를 잘하는 아이건, 못하는 아이건, 운동을 하건, 그림을 그리건, 농사를 짓고 싶어하건, 시를 쓰건, 영화를 찍건, 연예인을 하건, 대한민국의 같은 해에 태어난 거의 모든 아이들 60만명이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지를 앞에 두고 하루 10시간 가까이 씨름하게 하는 사회. 그리하여 그 시험의 결과가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지우는 사회. 그 시험을 위해 관공서와 기업들이 출근 시간을 늦추고 경찰이 비상근무에 들어가고, 비행기가 잠시 이착륙을 멈추는 사회.

3년전엔가, 언어영역 1교시가 끝나자 한 여학생이 시험장을 빠져나와 투신자살을 했지. 또 어느해인가는 가채점을 해보니 평소보다 20점 떨어졌는데, 언론에선 일제히 예년보다 5-6점 오를 것이라 보도한 것을 본 어느 여학생이 자살을 했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년보다 10점 가까이 떨어졌고, 그 여학생의 억울하고도 비통한 죽음은 잠시 이야기되다 사라져버리고 말았고….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 수능시험을 통과하면서, 삶의 가혹함을, 누군가를 밟고서 일어서야 한다는 경쟁사회의 냉혹한 법칙을 깨닫는다. 열여덟, 열아홉, 그래도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들이 불과 몇 년 뒤 사회에 들어서기 직전 무렵에는 세파에 시달려 잔뜩 지친 어깨를 부대끼는 초라한 모습의 예비사회인으로 탈바꿈한다.

이 수능시험을 12년간 학교 교육의 총결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무시무시한 표현을 받아들이기 두렵다. 12년의 삶을 하룻만에 평가하는 사회가 유사이래 또 어디 있었던가?   왜 그 12년의 세월 속에 서려 있는 삶의 총체를 ‘하루 사이에’ 평가받아야 하는가. 그 12년은 성장통의 시간이었다. 그많은 추억들과 가슴이 아리는 슬픔들과 번민 속에 지낸 12년이었다. 그 성장통을 거쳐온 힘겨운 영혼에게 사회가 주어야 할 것은 서열의 낙인일 수는 없다.

나는 해마다 맡은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수능을 치르기 전 마지막 시간 박완서 선생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과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이라는 동화를 읽는다.
뭔가 환호하고 싶은 충동에 우연히 마라톤 응원 대열에 끼게 된 박완서 선생은 이미 선두대열이 지나가버린 것을 알고 실망하지만, 꼴찌나 다름없는 주자가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제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숙연해진다.

"여태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이십등, 삼십 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내가 근무하는 밀성고에만 해도 참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도 있고, 일찍부터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수능 시험을 치른 우리 학교 아이들이 시험 결과가 자신을 어떤 자리에 위치지우건, 다만 이 목마른 나날들을 있는 힘껏 버텨온 자신에 대한 대견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수능에 ‘대박’이 있을지언정 인생의 대박은 없다. 마찬가지로 수능의 실패는 있을 지언정, (노력한) 인생의 실패는 없다. 세상은 바늘끝만큼의 오차도 없는 엄격한 인과(因果)의 법칙으로 흘러간다. 사랑한 만큼 사랑받고, 이해한 만큼 이해받는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과 성실성만큼 스스로의 삶이 자유와 행복으로 충만한다.

삶에 대한 책임과 성실성은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자존감이라고 나는 믿는다. 혹시 3년간의 고교시절이, 12년간의 학교 교육이 이 시험 하나로 결과지워졌다고 믿는,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의 자기 존재감에 대한 깊은 좌절에 빠져있을 아이들에게, 우리가 수능을 치르기 전 마지막 시간에 읽은,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에 등장하는 한 구절을 전해주고 싶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좌절감에 상처받은 강아지똥에게 흙덩이가 전해주는 충고.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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