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공명

(2013-08-15 17:50:48)
이계삼
너의 '진정성'이 들려
‘마포 갈비’ 계열의 음식점들이 서로 ‘원조 다툼’을 하다 끝내 ‘순 진짜 원조 마포갈비 본점’까지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말이지만, 나는 전교조가 자신을 ‘참교육’으로 표방하는 것이 그리 마뜩치 않았다. 물론, ‘참교육’은 나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등장했지만, 교육은 좋은 교육과 나쁜 교육이 있을 뿐이고, 세상 많은 일들처럼 교육 또한 의도가 아니라 결과에서 판가름나는 것일진대, 굳이 스스로를 그렇게 ‘참교육’이라고 표방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떨쳐지지 않았다. 참기름이 ‘가짜 참기름’과 싸워야 하듯이, 어느 순간에는 참교육도 ‘가짜 참교육’과 스스로를 구별해야 하는 고약한 상황이 언젠가는 도래하리라 생각했다.

참여정부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이명박정부는 ‘오해’라는 단어를 가장 즐겨 쓴 것 같고, 박근혜정부는 ‘아무 말 않는’ 것으로 정리된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참여정부가 ‘진정성’이라는 말을 너무 즐겨 써서 망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예컨대, 그들은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도 ‘우리의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했다. 그들은 행정부와 입법부까지 장악하였지만,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끊임없이 ‘약자 코스프레’를 했고, 연이은 실정으로 자신들의 지지층까지 냉담해질 때, 그럼에도 자신들의 도덕적인 정통성을 환기시키고, 그들을 설득시켜야 할 때 ‘진정성’이라는 수사를 사용하곤 했다.

지난 월요일, 한국전력은 밀양시내 중심가에서 이른바 ‘궐기대회’라는 걸 했다. 그들은 내가 지켜본 집회 중에 가장 짧은, 5분만에 모든 순서를 마쳤는데, 그래도 ‘인증샷’은 찍어야했기에 구호를 제창하였고, 맨 마지막 구호는 “시민 여러분, 저희들의 진정성을 믿어주십시오”였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들에게 요즘 거의 멸종 단계라는 ‘궁서체’로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도 어김없이 ‘진정성 있는 논의가 부족했으며, 이제는 대한민국의 장관인 나를 믿어달라’는 진정성의 수사가 등장했고, “나중에 만나면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대접해 주십시오” 운운하는 오글거리는 멘트도 빠지지 않았다.

대체로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뜻대로 하고 싶은데 잘 안 될 때, 실제로는 강자이지만 겸손하고 약한 척을 해야 할 때 등장한다. 물론 행동도 뒤따른다. 한국전력은 주민들의 백내장수술을 도와주고, 단체 관광을 시켜주고, 하천 청소를 하고, 전등을 갈아준다. 주민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지난 8년간 주민들이 어떻게 당했던가. 공사 현장에서 손주뻘 인부와 용역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듣고, 성폭력에 분신사망사고까지 났던 곳에 천사 같은 얼굴로 찾아와 이렇게 ‘이쁜 짓’을 하다니.

그러나 주민들은 또한 알고 있다.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열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세척’하고,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들을 고립시켜 공사를 강행하고 몇푼 보상금을 안겨주고 송전탑을 다 세운 뒤 저들은 표표히 사라질 것임을. 지금은 쓸개라도 떼줄 것 같지만, 정작 저들이 관심있는 것은 주민들의 생존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이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저들이 말하는 ‘진정성’의 ‘진정한 실체’임을.

가능하다면, 우리는 도덕적인 수사로써 스스로를 규정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지 말아야 하리라. 우리는 약한 존재이므로, 우리의 삶은 언어를 따라잡지 못한다. 언어가 타락하여 ‘텅빈 기표’가 되었을 때, 그것이 표상하는 실체를 회복할 방책이 사라져버린다. 말을 아껴야 하고, 아무데나 갖다 붙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삶을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중요한 방책이다. 요즘, 한국전력이 밀양에서 벌이는 행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한겨레 2013.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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