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공명

(2013-02-07 15:51:03)
이계삼
힐링 유감
‘안철수가 야권단일후보가 되었으면 이기도고 남았다’는 법륜 스님의 인터뷰를 보며 착잡했다. 마음 허전한 많은 이들이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가정법의 상상력을 발동해 보았을 것이고, 결국 한층 더 허전해진 마음으로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나는 법륜스님의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유를 불문하고 박근혜를 찍고자 작심하고 있었던 이 나라 51.6%의 인민들을 과연 안철수는 얼마나 끌어올 수 있었을 지에 대해 나는 퍽 회의적이다. 민주당과 반드시 거리를 두어야 알리바이가 성립되는 그의 ‘새정치론’의 흠집을 내지 않은 채 본선에서 저들이 제기했을 게 뻔한, ‘국회의원도 없이 새정치 실험하다가 나라 망한다’는 공세를 돌파할 정치력을 안철수가 갖추고 있었던 것인지, 박근혜와 문재인의 중간 지점에 있던 안철수가 어떻게 박근혜와의 정책적 변별력을 드러낼 수 있었을지, 그런 구체적인 정책적 컨텐츠를 안철수가 갖추고 있긴 했던 것인지에 대해서 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착잡했던 것은 다름 아닌 법륜스님이 지난 몇 년동안 우리 사회를 풍미한 이른바 ‘힐링’ 열풍의 진원지이자 한 주역이라는 사실 때문이었고, 수없는 이들이 ‘멘붕’의 고통을 호소하고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은 시점에서 이른바 ‘안철수 가정법’을 다름 아닌 법륜 스님이 제기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새삼스럽게도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 퍼져온 힐링과 멘토 열풍, 그리고 그 바람을 등에 업은 ‘안철수 현상’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법륜 스님의 명쾌한 진단을 듣기 위해, 안철수와 같이 탁월한 스펙에 인간미까지 갖춘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얻기 위해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나는 ‘청춘 콘서트’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보면서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청년들은 ‘지금 유학을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여자 친구와 헤어져야 할지 말지’를 스님에게 물었다. 청년들은 안철수에게 스타덤 속 연예인과 다를 바 없는 선망을 드러내곤 했다. 힐링과 멘토 열풍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특징짓는 ‘무력감과 나약함’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최근 ‘레미제라블 열풍’이 법륜스님과 안철수 같은 ‘이 시대의 멘토’들이 자신들의  정치성을 커밍아웃해 버린 뒤의 빈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멘토와 힐링 열풍의 대선판 확장버전’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갖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대선 때 할 수 있었던 일이란 그저 ‘손가락’으로 하는 일, SNS 속에서 서로의 불안감을 위로하고 위로받은 것, 기표소에서 누군가를 눌러 찍은 것, 정도이다. 혁명이 불가능해져버린 시대에, 그나마 옅은 변화의 기약마저 무참하게 깨진 채 무력감으로 떨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온 저 200년 전 혁명의 서사시가 주는 이미지를 그저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에 함께하는 어르신들과 함께 현대차, 쌍용차,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농성장을 다녀왔다. 아들 같은 서른다섯살 청년이 가족을 남긴 채 목숨을 끊은 현장을 보면서, 칼바람이 부는 철탑 위에 새장 같은 집을 짓고 서 있는 노동자를 보며 어르신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늙은이들도 살아 싸울 테니, 당신들도 약한 마음 먹지 마시오’, 어르신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때로는 어색한 하트를 그려주며, 고공의 노동자들을 위로했다.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결국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내가 넘어진 자리 옆에 함께 넘어진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래서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일어서는 것, 그것이 나는 ‘힐링’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누군가의 ‘힐링’을 기다리지 말자는 것이다.(한겨레 2013.1.18)

문종호 (2013/02/12 22:02:38)

이런경우의 가정법은 정말 아닌거 같습니다. 분명히 51.6%는 우리의 친적이고 이웃이었으니까요.
저도 법륜스님의 진단에는 동의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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