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공명




(2016-02-07 20:25:35)
초록
문재인에게 우리는 '반대측'이었다.
1. 문재인에게 우리는 '반대측'이었다.

이제까지 변두리에서 하던 이야기를 몇차례 나누어 공적으로 정리해보려한다.

' 6년 동안 현장싸움을 하고 있는 내성천의 친구들에게는 단 한번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단체들이 모여 '내성천살리기 범국민대책위' 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상황의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 (4대강 살리기와 이름이 혼동되기 도 하고)
모래무지 사진을 들고 흰수마자를 살려 달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내성천살리기범시민대책위'

수년째 내성천 조류조사와 영주댐철거 소송을 진행하고 계신 박중록 선생님이 운영위원으로 계신 습지와새들의친구들도 연명 단체로 수차례 기사화 되었기에 문의드렸더니, 그동안 연락 받은바는 없고, 수 일전 환경연합에서 연대체참여를 요청을 해서 거절했다고 하신다

도데체 이름을 모으고 세를 불려 얻으려는 것이 무엇일까?
면면을 보면 환경운동연합이 주측이 되어있고, 대구 환경청과 낙동강포럼을 진행하던 일부 단체들, 지난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금강리 마을에서 진혼굿을 하고 채토식을 해서 영원히 사라버릴 금강마을의 흙을 미래에 전해주겠다고 하던 단체도 연대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천성산 문제로 돌아가 보지 않을 수 없다.  








천성산 당시 '백지화 상태에서 원점 재검토'는 한비구니가 삼동의 거리에서 단식을 하면서 어렵게 얻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부산환경연합이 주측이 되어 정부와 '노선재검토위'가 만들어지는 동안, 처음 문제를 제기하고 천성산 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던 나는 단 한통의 전화도 받지못했고, 그들이 수천만원의 용역을 받고 천성산을 비행기로 날아다니는 동안 나는 부산 시청앞 광장에서 43일동안, 노선재검토위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3000배를 하고 있었다.

예상처럼 노선재검토위는 천성산 공사 강행의 면죄부를 주었고, 그 결과는 천성산 소송의 대법원 판결문에까지 인용되었다.



지난 대선 직전 발간한 문재인의 자서전 '운명'에는 '노선재검토위가 어렵게 결론을 내렸으나 반대쪽이 승복하지 않았다' 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반대쪽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4페이지에 걸쳐 '운명' 에 기록된 천성산 문제는 대부분 진실이 아니었기에 나는 문재인과 소송까지 진행했다. 그런 그들이, 내가 머무는 지근에 언론사를 데리고 들어와 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외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가?

잊어야 하는 건 무엇이고, 밝혀야 하는 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천성산 대법원 판결문과 소송에 들어가기 전 문재인 표가 보낸 편지글을 함께 올려본다.



2. 문재인에게 우리는 '반대측'이었다.
문재인이 운명에서 이야기한 것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은 ' 백지화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겠습니다'였고 그 결과는 공사 강행이었다.

당선 직후 , 공사강행에 맞서 거리의 단식을 시작했고, 부산환경운동연합과 정부가 노선재검토위를 꾸려 헬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동안 나는 삼복의 거리에서 3000배를 했으며 ,


노선 재검토위의 결과 발표 후 내원사 선원 스님들이 7박 8일 동안 부산 시청앞에서 천성산 1봉 까지 3보 1배로 천성산을 올랐다.

이후 천성산 문제는 법정으로 갔지만 ,그러나 노선재검토위의 결과는 천성산 소송 대법원 판결문에까지 인용되었다 . 당시 우리가 걱정하던 것은 환경운동의 위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이미 와있었다.


3. 문재인에게 우리는 '반대측'이었다

노선재검토위가 움직이는 과정을 지켜보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들이 만든 단체에 내가 '공동대표'로 되어 있던 일이었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 서류를 들고 내려와 서류에 스님이 공동대표로 되어 있어, 당연히 스님이 함께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환경연합에 전화해서 내가 물었다.
'어떻게 내가 당신들이 만든 단체에 '공동대표'가 되어 있느냐고? '
돌아 온 답은
'회의해서 추대했다'였다.

'대통령을 추대하지 왜 나를 추대했냐? '고 화를 냈고 , 수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노선검토위가 끝날 때 까지 답신이 없었고, 서류상에서 그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기억들을 이제 차근차근 꺼내 보려한다.




4. 문재인에게 우리는 '반대측'이었다.
'스님! 지금 천성산 문제를 제기하면 새만금은 끝납니다. 어떻게든 우리가 중재를 할 테니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요.' 그렇게 나를 만류했던 사람은 마창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이었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등 4대 종교인들과 시민들이 50여 일간 270km의 거리를 지나, 서울 입성을 앞두고 있던 때였고, 3보 1배의 선두에 계시던 수경스님이 탈진하여 병원에 실려 가던 상황이었기에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주일은 무심하게 10년이 지났고, 그들은 '내성천살리기 범시민대책위' 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내가 머물고 있는 지근에 와서 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새만금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새만금 반대운동 당시 환경운동연합 습지센터 김모국장과 간사는 기업과 지자체로 부터 수억의 프로젝트를 받아 횡령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고,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자를 돕기 위해 받은 후원금을 빼돌려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그 사건이 새만금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어찌 생각하면 그들도 아픔의 땅에, 혼란의 시대에 태어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세계 5대 갯벌 새만금과 천성의 작은 늪에서 들려주던 생명의 소리가 사라지던 현장에 있었다. 그 기억을 묻기 위해 강으로 내려왔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지않기 위해 기록을 시작했다.

당시 천성산에서 겪은 일들이 이 사회의 구조라고 생각했기에, 내성천의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사무국이나 정회원 없이 개인의 연대에 의지하였고, 재능 기부로 일을 해왔다.

밤새워 수를 놓아주신 분들이 계셔 100m가 넘는 펼침막을 만들 수 있었고, 내성천을 위해 릴레이 기고글을 올려주신 분들이 계시고, 30여차례 전시를 기획해준 친구가 있어 한평사기 운동을 순조롭게 진행 할 수 있었다.

텐트학교 운영을 도와주던 친구가 있어 강으로 사람들을 초대할 수가 있었고, 생태조사를 위해 먼걸음 해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시고, 안목이 없는 분야에 식견을 넓혀주신 교수님들이 계셔 5차례 토론회와 소송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일손을 놓고 달려와주신 지역분들이 계셔 4년 동안 텐트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뗄나무를 해주시고 텐트를 챙겨주신 분들이 계셔 춥지 않게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함께 강길을 걸어주던 친구들이 있었고, 힘들 때 손을 잡아주시는 종교인들이 있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내성천에는 내성천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부터 강이 거칠어져서 아이들과 함께 강으로 내려서는 일이 위험한 일이 되어 멈추고 있지만, 아이들은 수년 동안 내성천 답사에 함께했고, 내성천 사진이나 펼침막을 들고 서울 거리를 걸었다.
내성천의 아이들을 처음 만나건 2010년 겨울 경천대길 걷기 행사를 할 때였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고 청년이 되었다. 혼자 나섰던 길이지만 많은 인연들과 연대하고 보이지 않는 천의 눈이 이 현장을 바라보고 있기에 강이 무너지고 댐에 물이 차올라도 절망하지 않고 현장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가야 할 길은 너무나 멀고 길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한 것은, 그른것이 가야 바른것이 온다는 사실이다.




엄마손 잡고 가는 5살 준성이가 초등학교입학 ^^



초록 (2016/02/07 20:55:45)

만일, 환경연합이 우리아이들이 내성천을 위해 활동한 일의 10분의 1이라도 했다면, 아마 이런 글을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초록 (2016/02/07 21:01:22)

수정심이 올려 준 어린 친구들의 근황 / 준성이가 초등학교입학했구 주연,금비,준엽,준일이가 중학생이. 준일이,승희가 이번에중학교졸업하구 고등학생이 되네요ㆍ재희는 고등학교 졸업을 엊그제 했구요ㆍ초등6학년부터 꾸준히 왔던 샛별이가 고3이되요ㆍ아윤이두 고3ㆍ지효는 높은성적으로 장학금을 타고 진희는 공대 총부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하고있습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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