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공명

(2008-06-06 18:23:56)
초록
녹색평론’ 100호, 그 푸른 16년 / 축시
지난주 일요일 부산 공간 초록에서 녹색평론 100호 경남 독자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모임은  주최하는 친구들이 있긴는 했지만 자발적인 모임이었고 맑고 푸르렀습니다.
 


‘녹색평론’ 100호, 그 푸른 16년                                                                       - 경향신문 논설위원 김택근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창간사)

격월간 ‘녹색평론’은 이렇듯 물음으로 시작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공명(共鳴)이 있었다. 이제 정기 구독자가 5000명을 넘어섰고 자발적인 독자모임도 생겼다. 단순한 환경잡지가 아니라 나라와 사회의 현안에 대한 소통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의 재건에 이바지하려는 의도로 발간된 ‘녹색평론’이 100호를 맞았다.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 주도로 1991년 11월 창간한 이래 16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책을 펴냈다. 재생지로 만든 잡지는 내용 또한 질박했다. 검소한 삶이 지구를 살리고, 인간이 겸손해야 모든 생명에 평화가 온다고 주장했다. 창간호에서 밝힌 ‘범람하는 인쇄물 공해에 또 하나의 공해를 추가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독자들의 격려와 성원으로 불식되었다. 다양한 문제 제기와 더불어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은 그동안 숱한 메아리를 만들어 왔다.

‘녹색평론’이 처음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온 ‘고르게 가난한 사회’가 성장 위주의 한국사회에서 공명의 공간을 마련했음은 지속가능한 공동체로서 우리 사회가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징표일 것이다. 창간 때 이미 현대 문명의 교만을 우려하고 폭력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개탄했지만, 16년이 지난 지금도 문명에 대한 맹신과 폭력에 대한 유혹은 여전하다.

먹을 것이 널려 있어도 참다운 먹거리는 없고, 강물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역천(逆天)의 대운하 사업이 꿈틀거리고 있다. 끝없는 경쟁논리와 자기 확대의 욕망으로 움직이는 현대사회에서 ‘녹색평론’의 주장은 귀하고 맑았다. 앞으로도 섬겨서 섬김을 받는 공생의 녹색바람을 일으켜 주기 바란다.


푸른 보리밭을 꿈꾸는 조그만 텃밭 
                                                         -<녹색평론> 통권 1백호 발간에 부쳐 / 찬돌님 축시

살기 편해졌다는데
뒷방 모니터만 켜면
세상 돌아가는 일 구석구석 들쳐보는데
뭐든지 물어만 보면
좌르르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지도 위에 줄만 그으면
땅 속으로 길이 뚫리고 공중으로 도로가 서는데
뭐든지 빠르고 가볍게 작고 얇게
뚝딱 뚝딱 만들어 내는 세상인데
저 너른 들판에 옥수수 하나만 심고도
농사가 되는데

일렬로 가두어 놓은 소들 제 소뼈 갈아 먹여
무럭무럭 키우는데
인구는 끊임없이 늘어나야 하고
경제는 언제나 성장해야 하고
에너지는 필요하면 아무 때나 보충할 수 있고
낳고 기른 물건은 지천으로 넘쳐나야 한다는데

재생종이로 만든 어느 볼품없는 흑백잡지는
이제 땅 밑에 기름이 거덜났단다
이제 땅 위에 푸른 것들. 기름진 흙들
죄다 자취를 감춘단다
푸른 하늘 그 위로 구멍이 뻥 뚫렸단다
그게 다 지구별의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저지른 짓이란다

늦은 감이 있지만
아니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얼핏 희망섞인 미끼를 던져주기도 하는데
텃밭 하나 지어먹을 수 없는
이 아스팔트 콘크리트 바닥에서 어서 떠나란다
무조건 땅에 빌고 자연에 빌고 가난하라 한다

옛날에는 그렇게 다같이 어울려
땅을 모시고 자연을 받들고 살았다며
그리도 살만하다고 꼬드긴다
그게 희망이고 그게 살길이라고
17년 전 맨 첫 호부터 1백호가 나온 지금까지
똑같은 소리를 에고 지고, 둘러치며 메치며
되풀이하는 멋대가리 없는 잡지

지금은 기억도 아슴하지만
언제나 잔소리처럼 염려하던 할머니의 말씀일까
아내를 둘 둬본 적은 없지만
혹 이게 바람벽에 온기 나누던 조강지처의 모습일까
사시사철 그 나물에 그 반찬이지만
꼭 필요한 찬거리를 대주던 텃밭의 구실일까

그래 그랬던 것 같다
숱한 정보와 지식의 잡풀 속에서
그나마 온전한 양식으로 두고두고 곱씹으며
어둔 눈 씻게 해준,
작고 거칠지만 단단한 씨앗 하나
마음에 심어준,
연약하나마 두 다리로 땅을 딛고 버티게 해준
조그만 지식의 텃밭,

언젠가 하늘과 바람과 땅의 기운이
어우러진, 다같이 가난하고 그 속에서
즐거이 땀 흘리는
푸른 보리밭을 꿈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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