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공명

(2011-01-17 10:51:12)
초록
만리장성이 완성 되었을 때 - F. Kafka


만리장성이 완성 되었을 때     - F. Kafka

만리장성은 최북단부에서 끝마무리 되었다. 축성은 동남쪽과 서남쪽 끝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가 여기에서 결합된 것이다. 분할 공사의 이러한 시스템은 동서의 노무부대라는 두 개의 대부대내에서 결합된 것만이 아니고 그 중의 작은 단위의 소부대에서도 이루어졌다.

대략 이십 명의 노역자가 집단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집단이 약 오백 미터 길이의 성벽을 쌓아야했다. 그러면 인근의 집단이 그 반대편에서 같은 오백 미터 길이의 성벽을 마주 쌓아나갔다. 그러다가 두 성벽이 완전히 이어지고 나면 이천 미터 길이의 성벽은 연달아 축성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고 노역자의 집단은 오히려 또다시 다른 지방으로 성벽을 쌓기 위해 전속되었다.

물론 이러한 성벽 방식으로 하면 수없이 많은 커다란 간격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간격은 후에 와서 차례차례 서서히 메꾸어져 갔다. 더구나 여러 개의 보충 공사는 이미 만리장성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공식 발표 된 뒤에 비로소 이어진 것도 있다. 물론 몇 군데는 전혀 손도 대지 않은 성벽 사이의 간격이 그대로 방치 되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성벽 공사 때문에 생겨났음직한 수많은 한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소한 자기 나름의 눈과 자기 나름의 척도로 제 아무리 조사해 봐도 성벽의 거리가 방대하기 때문에 확인 할 수 없는 전설인 것이다.

우선 누가 봐도 당장 알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의미로 보나 처음부터 일관공사를 한다거나 최소한 동서, 두 주요부분에서 세분된 분할 공사를 하는 것이 이점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성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북방의 야만족을 방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물론 이와 같이 동강난 성벽이 어떻게 적을 방비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그 같은 적을 방비 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축성자체는 끊임없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것이다. 황량한 산야에 고립된 성벽의 부분들은 유목민에 의해 언제나 파괴되기 쉬웠을 것이다. 그 당시 이 유목민들은 성벽의 축성으로 인해서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메뚜기와 같은 종잡을 수 없는 속력으로 주거지를 옮겼기 때문에 필시 공사의 진척을 보는 그들의 통찰력은 우리네 측성자들 보다 훨씬 우수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장성의 축성은 앞에서 열거한 방법 외에는 달리 성사시킬 방도가 없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성벽이라는 것은 우선 수 세기에 걸친 방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도면밀한 공사 이어야 했고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망라한 축성의 지식을 이용해야하는 것이었다. 공사에 종사하는 사람들개개인의 지속적인 책임감은 그러하기에 이 사업을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다. 비천한 계급에서는 서민계급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알량한 임금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에서부터 무지한 품팔이꾼이면 부족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4인조의 품팔이 노무자를 지휘 통솔하는데 있어서는 한 사람의 완전히 제 몫을 하는 건축업에 지식을 쌓은 인물이 필요했다. 즉 이럴 때는 무엇이 소중한가를 마음속 깊이 공감 할 수 있는 남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지휘하는 사람의 위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요구되는 임무도 더욱 큰 것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지휘의 인물들은 사실상 축성공사에 필요 있을 만큼의 수위에 미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상당수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안이한 마음으로 사업에 착수한 것이 아니었다. 성벽을 착수하기 오십년 전부터 장성으로 둘러막아야 하겠다던 중국의 전토에서는 건축업, 특히 축성술을 가장 중요한 학문으로 선포하고 그 밖의 다른 학문은 이것이 건축업과 연관 있는 한에서만 인정되었다.

나는 지금도 아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아주 어렸던 나이에 거의 걸어 다닐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유치원 마당에서 우리가 자갈을 모아다가 한낱 성벽이랍시고 돌을 쌓던 일, 유치원 선생님이 저고리 소매를 걷어 올리시고 달려오면 당연히 모든 것은 무너져 버렸고 쌓아 올린 돌이 약했기 때문에 질책하셨으므로 사방으로 흩어져 집으로 도망치던 일들을, 하찮은 사건이지만 시대정신을 규정짓는데 있어서는 특기 할 만 한 것이다.

내 나이 스무 살이 되어 보통학교 졸업식을 치렀을 때 축성 공사가 시작 도니 것을 나는 다행으로 여겼다. 다행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각자 지망했던 학교에서 일찍이 저마다 익혀놓은 최상의 교육관정을 이수했던 수많은 청년들이 여러 해가 지나도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해볼 수도 없고 하여 머릿속에 만 그 방대한 축성 계획을 그려 가지고 무서워하면서 엄청난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제일 하급이라도 종내 축성공사의 심장이 되어 축성에 임하게 된 젊은이들은 사실상 그 임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공사에 대한 일만을 골똘히 생각하고 땅속에다 파묻어버리는 초석과 더불어 제 몸이 공사와 한 몸이 되었다고 여기는 일만을 부단히 염두에 두는 사람들이 축성 업자들이었다.

이러한 축성업자들은 철저한 작업을 능률 껏 해보게다는 욕망 이외에도 자기가 완성해 놓은 공사를 끝내는 자기 눈으로 한 번 보려고 하는 초조감에 들떠 있었다. 품팔이군은 이러한 초조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품삯에만 쫓기는 인물인 것이다.

중앙의 상급지휘관들도 그랬고, 뿐만 아니라 중급 지휘관들도 당연히 공사의 다양한 진척에 관해서는 통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정신적인 투지력이 해이해 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급 지휘관들, 겉으로는 자신들이 맡은 하찮은 임무에비해서 정신적으로는 훨씬 많은 꿈을 안고 있는 이런 인물들에게는 별도의 특별한 배려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 공향에서 수백 마일이나 떨어진 인적 하나 없는 산간벽지에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돌과 돌무더기만 쌓는 일에 몰두하도록 할 수는 없었다. 그토록 끈기를 가지는 가지고 일하는, 그러나 장구한 인간살이를 하면서도 완성의 전망이 안 보이는 작업에서 희망도 없는 적막감에 이들은 좌절을 했을 것이고 특히 공사 그 자체에 대해서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분할공사의 시스템은 그러기 때문에 채용된 것이다.

오백 미터의 축성은 대략 오년간에 걸쳐 완성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지휘관들은 당연히 지칠 대로 지쳐버리는 것이 상례였다. 자기에 대한 자신감, 공사와 세상에 대한 신뢰심을 상실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들은 천 미터의 성벽이 이어지는 축제의 넘치는 기분에 한창 들떠 있는 동안에 또 다시 먼 곳으로 전속되었고 길을 떠나가는 여행길에서야 그 자리에 완성된 성벽의 일부분이 치솟은 광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고급지휘소의 본부를 지나가면 그 때 거기서 이들에게 명예의 훈장이 수여되었으며 사방의 오지에서 물밀 듯이 몰려든 새로운 노무부대에서 환호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벽을 쌓기 위한 교각으로 정해 놓은 산림의 재목들이 쓰러지는 광경을 보는 것이었고 축성용 석재로 산들이 짓부서지는 광경을 보는 것이었으며 여러 성지에서 성벽의 완성을 신에게 기원하는 선남선녀들의 합창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초조감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그들이 맛본 고향의 편안한 생활이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고 축성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세간의 존경, 작업에 대한 보고를 귀담아 듣는 믿음직스런 겸허감, 소박하고 침착한 시민들이 성벽이 언젠가는 완성될 것으로 믿는 자신감, 이 모든 사실은 마음의 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영원히 희망에 찬 어린 아이들처럼 이들은 다시 고향을 떠나온 것이다. 또 다시 국민사업에 착수하려는 이들의 환희가 용솟음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일찍이 집에서 나와 여행길에 오르는데 그 때는 마을 사람 절반 이상이 긴 노정을 멀리멀리 전송해 주는 것이었다.

길과 길에는 사람의 떼거리, 장기와 깃발이 나부꼈고 이토록 국토가 위대하고 풍요하고 아름답고 고마울 때를 결코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모든 시골 사람들이 하나의 방벽을 쌓는,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가졌든, 자신이 과거에 무엇이었든 간에 있는 그대로의 일체를 가지고 일평생 감사의 마음을 품은 한 형제였다.

일치와 단결!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백성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이제 피는 하찮은 신체 속에 감금된 맴도는 것이 아니라 감미롭게 광대무변의 중국 전토를 맴돌며 희귀하는 혈조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상과 같은 연유로 해서 생긴 분할공사의 기묘한 시스템은 이해됐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을 채용하게 된 이면에는 모름지기 또 다른 근거도 없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이러한 문제에만 장시간 집착하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것은 못된다. 우선 겉으로 보기에는 핵심이 없는 문제 같지만 실은 이것이 축성공사의 기본문제인 것이다. 당시의 사상, 당시의 체험을 전달하고 이해시켜 보려면 이 문제를 제 아무리 깊이 파고들어 가도 부족할 것이다.

아마도 맨 먼저 말해 둬야 될 것은 당시로 보아 바벨탑 공사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을 업적들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신의 뜻에 맞느냐 안 맞느냐는 고사하고 최소한 사람의 척도도로 보아 바로 장성의 공사는 바벨탑과 필적하면서 정반대의 성질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축성공사가 시작될 무렵에 어느 학자의 손에 의해 이 두 가지 공사를 정확히 비교해 낸 책이 저술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 학자는 그 책 속에서 바벨탑 공사가 완성되지 못한 것은 일반이 주장하는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는 것, 또 그와 같은 이유에서라면 최소한 제일차적인 원인은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해 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는 문헌과 기록된 보고서에 의해서만 이 같은 사실의 실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실지를 답사해 보고서 바벨탑은 기초공사의 취약성 때문에 붕괴된 것이고 또 붕괴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우리 시대는 바벨탑이 실패한 시대를 훨씬 능가한 것이다. 학교교육을 받은 거의 모든 우리 동시대인들은 전문적인 토목기술자이고 기초공사의 문제에 있어서는 명확한 지식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학자가 목적을 삼은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고 위대한 성벽이야말로 비로소 인류역사상 최초로 새로운 바벨탑의 안전한 기초를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이 성벽이고 그 다음이 탑의 건립인 것이다. 이 책은 그 무렵 모든 사람의 손에서 읽혀져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그가 바벨탑을 여하히 구상하고 있었는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완전한 원형이 아니라 일종의 반원형 내기 사분의 원형을 이루는 성벽이 어떻게 탑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 여기에는 단지 정신적인 면에서만 논술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현실적 사실인 성벽, 수십 만 명의 노고와 생명의 결정인 그런 성벽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사업상의 계획, 물론 아리송한 계획이 아니라 거대한 탑의 계획이 스케치되어서 국민의 총력을 힘찬 새 사업에 결속시키려고 할 만큼 그 계획안이 세부분까지 작성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 책은 하나의 실례에 불과하지만 그 무렵 허다한 혼란이 사람의 두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모름지기 수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한 나라의 공동목적을 위해서 결속을 해보려는 이유 때문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그 본바탕이 원래 경박한 것이고 떠도는 티끌과 같은 성질로 되어 있어서 속박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속박을 받으면 곧 미친 듯이 그 족쇄를 흔들어 대면서 감옥의 벽, 쇠고리들, 자기 자신까지도 제멋대로 찢어발기려 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분할공사를 계속하는데 있어 이 같은, 더구나 성벽공사에 반대되는 이야기들이 지도부에 의해서 참작, 통찰이 안되었다고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 제가 여기서 하는 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인데 - 최고 지도부의 여러 가지 지령을 철자대로 되풀이 복창함으써 비로소 자기 자신이 누군가를 알게 되었고 지도부가 없으면 학교교육의 지식도 없고 위대한 천체 안에서 우리가 갖는 작은 분할적 직무를 위한 우리의 판단력도 미미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할 것이다.

지도부의 방 안에는 - 그 방이 어디에 있고 누가 그곳에 않아있는지 내가 묻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또 과거에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 이러한 방 안에는 사람의 모든 갖가지 생각과 소망이, 또 사람의 모든 목적과 실현이 역류되면서 맴을 돌고 있었다. 그러나 높은 창문을 통해서 설계도를 그리는 지도부원의 손 위에 신의 세계의 장엄한 광채가 떨어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기 때문에 지도부가 만일 진지하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일관된 축성공사에 당면하는 난관을 지도부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절조 있는 관찰자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지도부 자체가 분할공사를 계획했다는 결과만이 남은 것이다. 그러나 분할공사는 불가피한 응급조치에 불과했지 결코 합목적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도부는 비합목적적인 방법을 원하고 있었다는 결과가 남는다. - 얼마나 신기한 결론인가 - 물론 그렇지만 별개의 측면에서 본다면 지도부는 지도부대로의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오늘에 와서 본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는 데에는 아무런 위험이 뒤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 더욱이 가장 선량한 사람들까지도 남모르는 비밀의 원칙이 있었다.

「지도부의 지령을 있는 힘을 다해서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그러나 그것도 오직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 다음에는 일체의 깊은 생각을 중단하라.」 라고 하는 원칙이었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원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후에 와서 빈번하게 반복되었던 다음과 같은 비유적 설명에서 그 원리의 또 한 가지 광범위한 해석을 찾을 수 있다.

「네게 해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해서 좀 더 깊은 사색을 삼가라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해를 입을 것이라는 사실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요컨대 유해 무해를 말할 계제가 있을 수 없다. 너는 이를 테면 이른 봄의 시냇물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시냇물은 부풀어 오르고 물줄기는 점점 더 거세어져서 긴 양쪽 강기슭의 토지를 관개하면서 재 본체를 바다 속으로 밀어 넣으면 결국 바다와 한 몸이 되어 바닷물로 휩싸여 버린다.
- 이 정도로 지도부의 지령을 생각해 보라. - 만일 강물이 기슭을 넘어 버리면 제방 위로 범람해서 강물의 윤곽과 형태는 잃어버리다가 속도가 늦추어지면 자기의 사명에 반해서 내륙에 호수나 연못을 이루려고 애쓰는 것이다.
강물은 전답을 해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영구적으로 호수와 연못을 존속할 수가 없고 다시 강기슭으로 모여 들었다. 이듬해의 건조기가 되면 물론 깡그리 메말라 버리게 된다.
- 지도부의 지령을 이 정도로만 생각하지 말라.」

이상과 같은 비교는 성벽공사를 하는 동안에는 지극히 적절한 비교가 되었을 것이다.그래도 현재 내가 이러한 사실을 보고하는 자리에서도 그 비교는 최소한도 제한된 효과 밖에는 지니지 못하고 있다. 나의 조사는 오직 역사적인 기술에 불과하가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에 날아서 흩어져 버린 소나기구름은 이제는 더 이상 번갯불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철저히 파헤쳐 보고 싶은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만족해하던 그것 이상의 분할공사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나의 사고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내가 여기서 훑어 볼 수 있을만한 분야는 무한한 것이어서 내 사고력의 좁은 한계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 거대한 장성은 누구를 방비하기 위한 것인가? 북방의 만족에 대한 방비인 것이다.
나의 출생지는 중국의 동남부이다. 북방의 어떠한 만족도 우리들의 고향을 위협할 수는 없다. 우리들은 고서에서 이들이 원래 자기네 본바탕대로 저지르는 잔혹한 행위를 읽고 화평스러운 정자 밑에서 우리는 서로 탄식하기가 일쑤였다.

화가가 그린 어느 사실적인 포스터에서 우리가 본 것은 그 저주받은 듯한 무서운 얼굴, 활짝 찢어진 입, 잔뜩 위로 삐어져 나온 날카로운 이빨들이 박혀 있는 턱주가리, 약탈을 하려고 흘겨보는 듯한 찡그린 눈, 약탈물을 입으로 짓씹으며 갈기갈기 찢어발길 듯한 모습들이었다.
어린애들의 나쁜 짓을 하면 우리네 사라들은 이런 그림들을 아이들 앞에 쑥 내어 밀었다.

그러면 어린애들은 엉 소리 내어 울면서 목을 끌어안으며 왈칵 달려드는 것이었다.그러나 우리가 이 같은 북방의 야만족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 이상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도 그들을 실체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설령 그 자들이 야생의 말을 타고 우리를 저격하며 추적해 오더라도 고향마을에 눌러 있으면 볼 턱이 없는 것이다. - 중국은 그만큼 광활했다. 우리 고향까지 침입해 들어 올수는 없는 것이다.

공허한 허공으로 말 타고 달리다 길만 잃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태가 이럴진대 어째서 우리는 고향과 강과 다리와 부모와 울고 있는 처, 한창 글공부할 나이의 어린 자식들을 버리고 나와서 먼 도시의 학교로 가서 계속 모든 우리들의 생각을 호북의 축성공사에만 내어 맞기고 있는 것인가. 지도부에다 물어보자. 우리를 알고 있는 것은 지도부니까. 제 아무리 엄청난 걱정거리라도 지도부가 맡는다. 우리들의 처지를 알고 있는 것은 지도부 뿐 이고 개개의 분담된 우리들의 조직을 샅샅이 꿰뚫어 보고 있는 것도 이 지도부인 것이다.

그리고 또 지도부는 우리 모든 사람들이 처마가 낮은 오두막에 않아 있는 것을 보기도 하고 저녁에 가장이 식구들이 한 자리에 않아서 드리는 기도 한 마디 한 마디에 승인을 하든지 거부를 하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한다.지도부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견해로 보아 지도부의 존재는 벌써 오래 전에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부란 고관님 나으리들처럼 무슨 아리따운 새벽꿈을 꾸고서 상기된 몰골을 하고 모여 와서 황급히 무슨 회의를 소집, 황급히 결정을 짓는 그런 식의 존재도 아니고 또 저녁이면 잠자리에 든 백성들을 북을 쳐서 깨워 놓고 결의된 획의 내용을 실천에 옮기려고 하는 그런 존재도 아닌 것이다.

이를테면 어느 잡신이 그 전날 고관 나으리님께 어떤 길사를 예시했다는 덕택으로 연등회를 개최해 놓고도 이튿날 아침이 되어 초롱불이 꺼지기가 바쁘게 어두운 어느 구석에서는 사람을 잡아다 마구 매질을 하기도 했다.

지도부도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공사계획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북방의 유목민들은 축성공사의 원인이 오직 자기들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고 존경할 만한 아무 죄도 없는 황제폐하는 자신이 오직 축성공사를 지령했다고 믿고 있었다. 축성공사에 종사하고 있던 우리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이와는 별다른 것이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만리장성의 공사가 한창 진행되는 그 동안부터 그 후 오늘날까지 거의 전부를 나는 비교민족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 이러한 연구수단으로 해서만이 어느 정도 핵심에 접근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우리 중국인들은 어떤 민족적, 국가적 체제를 유일무이한 투명채로, 그리고 또 반대로 어떤 체제는 유일무이한 불투명체로 방치시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 원인, 특히 그 근본적인 현상을 조사하는데 언제나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더욱 매력을 느끼고 있다. 만리장성의 공사 역시 본질적으로는 이 문제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의 가장 애매한 체제라고 하는 것에 속하는 것이 필시 황제국이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북경에서는 물론이고 북경의 궁중사회에서는 황제국이라는 제도는 자명한 존재이다. 비록 그것이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자명한 것은 자명한 존재이다. 국법이나 역사학 교수들은 이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상세한 강의를 할 수 있고 그러한 지식을 대학생들에게 꾸준히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급학교로 내려가면 갈수록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회의는 명백히 감소되고 수백 년에 걸쳐서 뿌리박힌 몇 가지 교훈적인 원리를 둘러 싼 속물주의의 얼치기 문화가 산더미처럼 넘실대는 것이다. 이른바 그러한 교훈적 원리란 진리의 영원성을 상실한 것은 없지만 그와 같은 진개에 휩싸여서 영원히 이해되지 못한 채 묻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황제국이 어떤 것이냐 하는데 대한 물음은 내 의견 같아서는 백성들에게 직접 질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황제국은 그래도 아직은 민중의 궁극적인 지주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또 닷 내 고향에 관한 이야기만을 해 볼 수밖에 없다.

우리 고향 마을에서는 농신에 대한 축제와 그리고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멋진 제사가 있었는데 그 밖에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의 황제뿐인 것이다.우리가 만일 현재의 황제를 알고 있었거나 그 황제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도 제일 먼저 황제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지식을 얻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했다.물론 그것이 우리 소망을 채워주는 유일한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나 황제에 관해서는 거의 무슨 말도 전해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는 방랑승에게서도 그랬고 가깝든 멀든 어느 시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도 그랬다. 우리 고향땅의 하천만이 아니고 큰 강줄기를 타고 항해하는 거룻배 사람들도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들려오는 소리는 많았지만 그 많은 말 중에서 정확이 무엇이 어떻다고 하는 소리는 얻어 낼 수가 없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 만큼 큰 나라이다. 어떠한 동화도 중국이라는 나라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고 무한한 하늘도 중국 땅을 다 둘러치지는 못한다. - 그래서 북경은 오직 하나의 저에 불과하고 황제가 사는 성도 오로지 그 일점 중의 한 점에 불과한 것이다.물론 황제 자체는 또한 세계의 모든 옥상 위에 군림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으로서 살아 있는 황제도 우리가 눕는 침실 매트와 다름없는 침대에 눕는다.

치수로 잘 재어서 만든 침대이기는 하나 될수록 겉모양은 좁고 길이도 짧을 뿐이다. 우리들처럼 황제는 종종 사지를 뻗을 것이다. 그리고 피로하면 기품 있는 입을 벌리고 하품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남쪽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그곳의 그러한 사정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 우리가 사는 지방은 거의 티베트고지에 접해 있는 국경지방이니 말이다.

그러나 무슨 소식이든지 우리 고장에 와 닿는다고 하더라도 그 소식들이 너무 늦게 도착한다면 이리 낡아버린 뉴스가 될 것이다. 황제를 둘러싸고 기라성 같은 궁중의 무리들이 - 신하 막료의 재복을 입은 자들의 음모와 적의가 - 밀집되어 있을 것이고 또는 독이 묻은 화살로 황제를 그 왕좌에서 쏘아 넘어뜨리려고 늘 애를 쓰는 황가의 반대세력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황제위는 영원불멸하는 존재이지만 황제 한 사람 한 사람은 쓰러지고 몰락하는 것이다. 황제위의 전 씨족까지도 종래에 가서는 몰락하여서 단 한 번 목적을 글그렁거리다가 숨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백성들은 이 같은 투쟁, 고난사를 전혀 들어 보지 못할 것이다. 시장터 한 복판에서는 지배자의 무서운 처형이 자행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너무 시간 늦게 찾아온 사람들처럼, 혹은 도시를 처음 구경하는 사람처럼 빼곡히 밀집된 옆 골목 한 끝 모서리에 서서 지참했던 점심이나 말없이 씹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을 더 잘 표현하는 전설이 한 가지 있다.그 이야기는 이렇게 전해지고 있다.

황제는 오직 한 사람, 가엾은 신하에게, 즉 위풍당당한 태양 같은 황제 앞에서 아주 멀고 먼 어느 한 구석으로 도망을 쳐 버린 그림자 같은 존재인 그 신하에게 임종의 자리에서 윤지를 내렸다고 하는 것이다. 황제는 그 신하를 침상 앞에 꿇어 앉혀 놓고 황제가 하고 싶은 윤지를 귓속말로 신하의 귀에 속삭여댔다. 하도 중요한 윤지였음으로 황제는 몇 번이고 신하로 하여금 복창시켰다. 한 두 번 귓속말로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끄덕 함으로써 올바로 알아들었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황제는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앞에서 - 막혀 있던 사면의 모든 벽들은 일시에 허물어졌고 멀찌감치 그리고 드높게 치솟은 돌계단 위에는 고관님 나으리들이 원형으로 둘러 서 있었다. - 이러한 모든 사람 앞에서 황제는 그를 밖으로 내보냈다.

사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떠났다. 피로를 모르는 한 장사였다. 좌우 양팔을 휘두르면서 몰려든 군중을 헤치고 갈 길을 찾았다. 걸음을 막는 사람이 나타나면 태양의 표지가 붙은 자기 앞 가슴을 가리켰다. 그는 다른 사람이 따라 못 올 만큼 그렇게 계속 앞으로 척척 걸어 나갔다. 그러나 몰려든 군중 수는 엄청난 것이었다. 이들의 주거지도 끝이 없었다.활짝 트인 들판이 열려 있다면 화살처럼 날아갈 텐데. 그러면 너는 곧 네 집 대문을 두드리는 그 당당한 주먹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건 것은 고사하고 제아무리 애를 써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신하는 궁전의 가장 깊숙한 방과 방을 여전히 밀고 나아갔다. 그는 결코 그 모든 방을 다 거치지 못할 것 같았다. 방이 하나 끝나도 흡족해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리라. 또 숱한 계단을 싸움하듯 내려오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계단이 끝났다고는 해도 싸움에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리라.

궁전의 누각을 끝에서 끝까지 횡단해야 했었는데 누각이 끝나면 제2의 광활한 궁전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면 또 다시 끝났다고 생각하고 제일 바깥쪽 성문에서 달려 나오듯 하면 - 그러나 그런 일은 언제 있을 것인가 - 비로소 그 신하의 눈앞에는 이 세계의 중심부인 북경이라는 수도의 거리가 펼쳐 질 텐데, 모든 침전물로 잔뜩 쌓인 거리가 말이다. 아무도 이 밀림을 뚫고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황제라고 하더라도 죽은 자가 되어 버린 신하의 메시지를 가지고, 또는 그것으로 해서 - 너는 네 창가에 앉아 저녁때가 오면 너는 그 신하의 꿈이나 꾸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전설과 아주 흡사하게 중국의 백성들은 희망이 있는 듯, 없는 듯이 황제를 꿈꾸고 있다. 어떠한 황제가 통치를 하는지도 모르고 어느 왕조의 이름에 대해서조차 의아심을 품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역사시간에 왕조의 순서를 대대로 배우게는 되지만 세간 일반에서는 애매한 사실이 하도 엄청나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도 그러한 풍조에 휩싸이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노래 속에서만 그 이름이 아직 살아 있는 황제가 얼마 전에 선지를 내렸다느니 신관이 그것을 재단에서 낭독하였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고대 역사책에서 나오던 무슨 전쟁이 지금에야 비로소 일어났다고 하면서 상기된 얼굴을 한 이웃사람이 그 뉴스를 듣고 집안으로 달려오기도 한다. 비단 방석에 파묻혀 포식을 한 나머지 살이 찔 대로 찐 궁녀들이 교활한 환관들과 한 패가 되어 위품 있는 예절을 문란케 하고 지배욕에 부풀어 올라 탐심을 부리면서 쾌락에 잔뜩 빠져 가지고 끊임없이 나쁜 짓을 몇 번이고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과거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사건의 모든 색채는 더욱 더 무시무시한 빛을 발한다.언젠가는 또 마을에서 수천 년에 이미 작고한 황제의 피를 어느 황후가 한참이나 빨아 마셨다는 소문이 퍼져서 야단법석,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댄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역사에 남겨진 과거의 황제들은 이렇듯이 우리 백성들 속에 살아 있지만 현재 살아있는 통치자들은 또 죽은 자로 혼동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한 평생에 한 번 정도 우연히도 우리 마을에 중앙관서의 관리 한 사람이 찾아 와서 황제의 이름으로 어떤 요구를 제시하면서 세금장부를 조사해 보고 학교수업도 참관, 사제에게 이러 저런 행사를 물어 보기도 하다가 타고 온 가마에 오르기 전에 불러 모은 동리 사람들에게 일련의 긴 훈시로써 할 말을 다 요약하고 나면 만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가고 이 사람 저 사람 서로 얼굴을 훔쳐보다가 그 관리의 시선을 피하려고 쓸데없이 아이들이나 붙안고 고개를 숙이기도 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가. 동리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관리라는 자는 이미 죽은 황제 이야기도 그렇고 현재 살아 있는 황제 이야기도 하는데 어느 황제가 죽었고 살아 있는 황제는 누구란 말인가.그러나 살아 있던 황제는 벌써 세상을 떠난 지도 오래고 왕조도 소멸하였다.저 관리 나으리는 우리를 놀리는 걸.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 관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가 아니라는 듯이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색을 하고 우리가 복종을 할 분은 황제의 이름이 누구이든 간에 현제 살아 있는 통치자 밖에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왜냐하면 알지 못하는 다른 어느 누구에게 복종한다는 것, 그것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급히 달려가 버린 관리의 수레가 보이지 않게 되면 이미 다 깨어진 항아리 속에서 불쑥 일어선 놈이 제멋대로 발을 구르며 이 마을의 지배자로 등장하는 것이다.중국의 일반 서민들은 국가의 변란이나 동시대에 일어나는 전생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와 유사하게 관심 밖의 일이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유년시절에 있었던 한 가지 사건을 이 자리에서 더듬어 보련다.인근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주에서 폭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그 폭동의 원인은 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여리 이 자리에서는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된다.그 고장에서의 폭동의 원인은 매일 매일 아침이면 생기는 것이어서 그 때문에 백성들은 흥분하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그 지방을 우루 돌아다니던 거지 한 명이 폭동의 삐라를 들고 나의 아버지 집으로 온 적이 있었다.
그 날은 마침 금요일이었다.

손님들이 우리 방에 꽉 들어 차 있었고 방 한 가운데에 승려가 앉아서 그 비라를 훑어보고 있었다. 난데없이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비라는 잡담을 하는 무리들 속에서 갈기갈기 찢기어졌다.

물론 어느새, 잔뜩 포상을 받은 그 거지는 걷어채이며 방으로 쫓겨났다. 손님들은 모두 뿔뿔이 헤어졌고 좋은 날씨에 저마다 뺑소니를 쳐버렸다. 왜 그랬을까?
그 인근주의 방언은 우리 마을이 쓰고 있던 말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점은 문자로 쓰는 어휘의 어법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그것이 우리네 사라들에게는 구태의연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승려가 이 페이지 정도 읽자마자 이미 사태는 결정돼 버렸던 것이다. 그 사건은 벌써 옛날에 들었던, 그리고 벌써 옛날에 다 진압이 되어 버린 낡은 사건이었던 것이다. - 내 나름의 기억으로는 그런 것 같았다. -

그 거지의 입에서는 무시무시한 사건이 논박할 수 없을 만큼 흘러 나왔지만 그래도 좌중의 사람들은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더 이상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네 고장 사람들은 이렇게 현재라는 시간을 지워 버릴 각오는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에서 우리가 원래는 전혀 황제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려 든다면 그것은 진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내가 또 다시 되풀이해야 할 이야기지만 중국의 남부에 있는 우리 고장 사람들만큼 황제에 충성된 국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 충성이 중국의 황제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통구 앞길에 세워진 작은 나무기둥 위에는 신성한 용 한 마리가 정확히 북경을 향해서 공손하게 화염을 토하고 있지만 - 북경이란 수도 자체는 우리 시골 마을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저승의 세계보다 훨씬 생소한 것이다. 집과 집이 맞붙어 서서 들판을 뒤덮은 마을이 정말 있다는 것일까? 우리 고장의 언덕에 서서 보아도 시선이 끝닿을 데 없는 그 먼 곳에?

그리고 그런 지과 집들 사이에 낮이나 밤이나 머리와 머리를 맞대고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다는 것일까? 그와 같은 도시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쉬운 것은 북경과 그 황제는 단일체라는 것, 어쩌면 태양 밑으로 은은하게 시대의 변천 속에서 떠도는 한 조각 구름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할 때 거기서 생겨나는 귀결이란 어느 정도는 허심탄회하고 아무런 구속도 없는 생활이라는 것이다.그러나 그런 생활이 결코 부도덕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여행을 해 보면서도 일찍이 단 한 번이라도 내 고향에서만 순박한 예의범절을 지키는 곳을 대면해 본 적이 없다. - 이러한 생활은 현재 여하한 법칙의 지배와도 무관계한 생활이고 오직 옛날부터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교훈과 경고에만 순종하는 변화 없는 생활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전체를 보편화시킬 생각도 없고 우리 주의 수천 개나 되는 마을들이 다 그렇다거나 또 중국에 있는 모두 합친 오백 개의 주 역시 다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대상으로 삼은 책을 내가 읽었던 수많은 문헌을 바탕으로 해서, 또 내 자신의 견물을 바탕으로 해서 - (특히 만리장성을 쌓을 대 거의 모든 주의 심장부를 돌아다닐 기회에 나와 공감하는 여려 사람들에게서 수많은 재료를 얻었다.) - 이 모든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모름지기 내가 자신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황제에 의해서 지배되는 견해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내 고향 마을사람들의 견해와 어느 정도 공통된 기반을 보여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견해를 나는 절대로 하나의 미덕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황제국이라는 정치제도를 명백히 하기 위해 이 제도가 제국의 가장 먼 국경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으로 그리고 부단히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훈련을 시켰지만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에서 조차 오늘날까지 그런 훈련이 불가능시 됐거나 혹은 그보다도 등한시되었다면 그 성취시키지 못한 책임은 주로 정부의 죄책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은 인민 적체의 사고력과 신앙의 힘이 허약했다는 점도 있는 것이다.

중국의 대중은 북경이라는, 저 먼 지평선 너머에서 몰락해 가는 제국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존재로서, 그리고 현존하는 존재로서 자기네 신하들 가슴속으로 끌어 당겨 넣지 못했던 것이다. 민중의 가슴이란 고작 한 번 그와 같은 접촉을 마음속에 느꼈을 뿐, 그리고 접촉했다는 느낌만으로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정신적 해이를 갖는 그것 밖에 더 좋은 아무것도 원치 않는 백성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국가관이란 미풍도 양속도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약점이 바로 중국 국민의 가장 중요한 통일수단일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더욱 신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좀 더 과감한 표현을 해도 좋다면 바로 이러한 특성이 우리 중국인이 생활하고 있는 생활 바탕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하나하나씩 비난의 근거와 이유를 드는 것은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는 데는 부족한 것이고 오히려 화를 돋구어 주는 것으로서 우리의 생활기반을 뒤흔들어 놓지나 않을까 하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문제를 분석함에 있어 우선 당분간 종지부를 찍어 두려고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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