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공명

(2007-08-24 01:09:58)
초록
내가 사는 이 암자 나도 몰라라 .....


내가 사는 이 암자 나도 몰라라
深深密密하지만 옹색하지 않아
하늘과 땅을 가두었어 앞뒤가  없고
東西南北 어디에도 머물지 않네.                -  太古庵歌



오늘은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집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무엇을 가지는 것과는 조금 다른, 구속과 책임 그리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천성산 일을 하면서 저는 적요했던 산사의 수행처를 등지고 거리에 나와 5번에 걸쳐 이사를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12평짜리 콘도, 두 번째는 개곡리 마을 문간방 , 그다음은 그루터기 빈집, 그 다음은 한옥 뒷간 채, 그리고 이 산촌마을에 오기전에는 주유소가 붙은 가스집 이층에 새들어 살았습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가스 집 이층은 월세가 낮았습니다.

처음 단식을 나왔을 때는 삼동의 거리에 텐트를 쳤고 다음은 봉고에서, 다음은 청와대 앞 벤취에서 그리고 그다음은 부산 시청 대합실과 법원 앞에서 그리고 청와대 앞의 작은 골목집에서 그리고 정처가 없어 이곳저곳에 의지하였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었기에 지금 제가 살고 있는 12평 남짓한 토담집은 제게 궁전 같은 곳입니다. 적어도 이곳에는 월세를 걱정하는 일이 없고 또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거나 도청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전화도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았으니 그리할 수도 없습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다닐 수 있는 문은 부엌문 밖에 없어 천장 도배를 하는데 의자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10년 동안 비어있던 집이기에 창호의 문살은 비바람에 떨어져 나가 3분의 2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위에 창호를 바르고 국화잎이나 대잎을 끼워 넣으니 안쪽에서 보면 그런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무너진 아궁이를 손보는 일은 마을 어르신들께서 하루 품을 내어 해주었지만  남의 손 들이지 않고 그럭저럭 손질해가며 살고 살아지는 것은 목수의 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져서 시간이 흘러 일 년이 지난 지금은 꽃밭도 만들고 집주위에 터밭도 일구었습니다.

마당 주위에는 작약과 국화, 다알리아를 심었고 꽃밭에는 채송화와 패랭이, 나팔꽃이 대나무를 휘감으며 예쁘게 타고 올라가고 배나무에 조롱조롱 달린 배는 단물이 오르고 있습니다.  낮에는 과실이 익어가는 냄새,  벌들이 날아와 잉잉거리는 소리, 새들이 곡식을 쪼아 먹고 나비들이 꽃 주위를 배회하는 풍경 속에 한가하며 밤이 되면 마당에 모기불을 놓고 늦도록 툇마루 끝에  앉아 목청껏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들으며 먼 바다에서 떠오르는 달이나  유난히 빛나는 별과 벗합니다.

그러나......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여름의 寂音속에서도 한기는 스며있어 제게 찾아오는 이 작은 빛들은 빛이 아니라 빛의 소멸로 느껴집니다. 한쪽 끝은 무한, 한쪽 끝은 영겁, 한쪽 끝은 사바, 한쪽 끝은 나락인데 그 어느 길도 아직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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