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공명

(2007-05-30 13:59:40)
초록
다락논에 모를 내며

산비탈 아래 다락 논에 모를 심는 것을 시작으로 오늘부터 이 산촌에도 모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볍씨를 물에 담그고 판에 볍씨를 심고 모를 내는 것이 46일 만입니다.
  
  

<할매 거머리 없어?>
맨발로 첨벙거리며 논에 들어가시는 할머니께 저는 걱정스러워 묻지만 할매는 아예 대꾸도 안하십니다.

사실 저는 모를 심는 것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이 처음입니다. 50여년을 살면서 날마다 먹는 곡식이 어떻게 제 입에 들어오는지 몰랐다는 말을 차마 꺼내기조차 송구합니다.

저는 초파일을 지내면서 처마 밑에 달랑 등 두 개 달아 놓고 근 삼일을 꼬박 앓고 난후라 감히 논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이렇게 논둑에 앉아서 문득, 할머니의 소원과 어릴 적 기억 속의 제 첫 번째 소원을 생각해 냅니다.

할머니의 소원은 <이밥 한번 실컷 먹어 보는 것> 이었고 제 어릴 적 첫 번째 소원은 24색 크레파스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24색 크레파스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반에서 두세 명 밖에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할머니의 흙손이 논 가득 초록으로 색칠해 가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탐욕으로 길들어 왔는지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고 우리의 소원이 가난한 시절의 소원들처럼 절실하고 소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야운 스님의 자경문 중>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은 결단코 받아 쓰지 말라.

밭 갈고 씨 뿌림으로부터 먹고 입기에 이르기까지 비단 소나 사람이 드린 노력 막중함은 물론
벌레들 역시 해를 입는 일이 한량이 없다.

저들의 힘을 수고롭게 하여 나를 이롭게 하는 것도 오히려 마땅치 않은 것인데
하물며 다른 이의 생명을 죽여서 나를 살린다면 이를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농사 짓는 사내도 주리고 추운 괴로움이 늘 있으며 베 짜는 아낙도 몸을 가릴 옷이 없는데
하물며 나는 오랫동안 손을 노닐면서 주리고 춥다고 어찌 싫어하는 마음을 내겠는가.

부드러운 의복과 맛있는 음식은 응당 그 은혜만 무겁게 할 뿐 도에는 손해되는 것이며,
헤진 옷과 소박한 음식은 반드시 시주의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기에 남몰래 덕을 쌓는 것이리다.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이라도 삭이기 어려울 뿐이다.

송(頌)

풀 뿌리 나무 열매로 주린 배를 달래고,
소나무 껍질과 풀 옷으로 이 몸을 가리며,
들녘의 학과 푸른 하늘의 구름으로 벗을 삼고,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서 남은 세월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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